어슐러 K 르귄, [게드전기]의 미야자키 감독을 맹비난 (下) 만화 이야기들

번역 전반부에서 이어집니다.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게드전기]에 대한 원작자 르귄 여사의 15일 공식 홈페이지에 공개된 감상문의 후반부입니다.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르귄은 [게드전기]에 대해 시종일관 냉정하지만 차분한 어조로, 실망감과 비판을 적고 있습니다.
원작자가 영화화된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맹비난 하는 일은 거의 유례없는 일인지라, 짧은 영어실력이나마 간단히 번역해봅니다. (제가 시간이 없는 고로 두번에 걸쳐서 번역해 올립니다. 참, 이 번역문은 다른 곳으로 옮기진 말아주세요.)

영화에 대하여
 

[게드전기] 장면의 상당부분은 아름다웠지만 애니메이션이 너무 빨리 만들어진 나머지, 많은 장면이 삭제됐다. `토토로'의 세밀한 필치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파워풀하고 현란한 디테일도 없다. 이미지는 효과적이지만 너무 상투적이다.

장면의 상당부분은 흥분됐다. 그러나 그 흥분은 대부분 폭력에 의존한 것이다. 이러한 폭력은 내 책의 정신과도 맞지 않을 정도이다.

그리고 내 생각이지만, 장면의 상당부분이 맥락이 맞지 않다. 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내 책의 줄거리를 떠올려 보려고 얼마나 노려했는지 모른다. 같은 줄거리에 같은 등장인물에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애니메이션은 전혀 다른 분위기와 역사, 운명을 그리고 있어 혼란을 야기한다.

물론 애니메이션이 원작을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다. 영화는 소설과 전혀 다른 예술이며, 이야기의 형식도 다르기 때문에 어느정도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40년동안 출판돼온 책에 기반을 두고 그 제목을 빌려 영화를 만든다면, 적어도 등장인물이나 줄거리에 대한 어느정도 성실함을 보여야 하지 않는가.

미국도 일본도 내 작품을 영화로 만들 때마다, 내 소설에서 몇가지 컨셉이나 이름만을 빌려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전혀 내용도 다를 뿐더러 맥락도 맞지 않는 줄거리로 대신 채웠다. 원작은 커녕 독자에 대한 존경심마저 전혀 보이지 않는 그들의 행태가 궁금할 따름이다.

그리고 나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거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삶과 죽음, 세계의 균형에 대해 내 책의 대사를 자주 인용함에도 불구하고, 정작 내 책의 등장인물이나 그들의 행동동기는 전혀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메시지도 영화 속 등장인물이나 줄거리를 통해 표현하는 대신 `설교'해버린다. 물론 어스시 시리즈의 처음 3권에서는 설교 투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렇게 눈에 띌 정도로 표현하고 늘어놓은 적은 없다.


소설의 도덕과 논리도 영화에선 모두 사라져버렸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아렌이 아버지를 죽이는 장면은 동기도 없고 맥락도 없다. 영화는 아렌의 분신인 `그림자'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하지만 설득력이 없다. 주인공은 왜 빛과 그림자로 나뉘는가? 그에 대한 설명이 전혀 없다. 이 장면은 아마 소설 `어스시의 마법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 한데, 원작에서는 게드의 `그림자'가 등장하지만 마지막에 그것이 왜 등장했는지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 안의 어둠이란 `마법'의 칼을 휘두른다고 해서 간단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모든 `악'의 문제를 `쿠모/거미'라는 마법사로 간단히 표현해 버린다. 그리고 그를 살해해버림으로서 모든 문제를 간단히 해결해버린다.

현대 팬터지는(문학에서건 구조적이건) 선과 악의 대결을 묘사할때마다 `살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내 책은 그런 식의 대결을 의도하지 않았으며, 그런 식으로 단순한 문제와 단순한 해결방안을 제시한 적도 없다.

물론 (미야자키) 고로씨가 그린 영화속 날개를 접은 용은 아름다웠다.(물론 어스시의 용은 더욱 아름답지만) 고로가 그린 용은 좀더 부드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내 맘에 들었던 장면은 밭을 갈고, 물을 길고, 가축을 기르는 장면이다. 대지의 조용함과 차분한 삶을 나타내는 이 장면들은 영화속 액션과 전쟁 장면보다 훨씬 현명하다.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나의 어스시'를 발견할수 있었다.

 

피부색의 문제에 대하여

 

나는 어스시의 등장인물 대부분을 유색인종으로 묘사하는 반면, 백인은 주변 인물로 등장시키는데 그쳤다. 이는 물론 미국·유럽 독자들에게 인종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하기 위해서다. 유럽 전설에 기반을 둔 팬터지 주인공의 대다수는 백인이다. 그리고 피부색깔이 짙은 인물은 사악한 존재로 묘사됐다. 적어도 내가 소설을 쓰던 1968년엔 그게 보통이었다. 나는 그런 예상을 뒤엎음으로서 편견을 타파하고자 했다.

그러나 `어스시'의 TV시리즈를 만든 미국은 `색맹'임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어스시 세계의 등장인물 중 유색인종을 절반 이상 없애버렸다. 당시 백인 일색이 되어버린 어스시에 대해 나는 매우 화를 냈으며, 지금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틀리다. 나는 일본의 인종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애니메이션은 이른바 장르의 관습을 따른 것 같다. 미국인이나 유럽인이 보기에 애니메이션 [게드전기] 등장인물 대부분은 백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의 관점은 다를 수도 있다고 한다. 일본의 관점에서 볼때 게드의 피부색이 좀더 검어보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제발 그렇기를 바란다. 내가 보기에 모든 캐릭터들이 백인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극중 베이지색 피부나 약간 검게 탄 피부는 괜찮았다. 그리고 테나르의 곧은 머리카락과 푸른 눈동자는 문제없다. 테나르는 카기쉬 섬에서도 소수민족이기 때문이다.

<끝>


덧글

  • 깃쇼 2006/08/21 00:35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원작자를 생각해도 감독을 생각해도 감독의 아버지를 생각해도 착잡한 기분이 드는군요.
  • mojong 2006/08/21 16:16 # 답글

    뭐랄까, 원작자의 자부심에 기스가 갔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문장들이군요. 원작보다 나은 영화가 나오는 일도 있건만 왜이렇게 운이 없으신지 모르겠습니다.가슴이 아프네요... 번역 감사합니다 >_< 잘 읽었습니다.
  • 달빛느낌 2006/08/28 17:18 # 답글

    재능은 대를 이어 유전되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건너서 유전되지...^^ 손자의 출현을 기대해 보지요 뭐. ^^
  • 여리작의 2007/04/12 23:44 # 답글

    저도 게드전기 보고 어처구니 없어했던 기억이 납니다. 원작자는 오죽하겠어요..;; 억하심정.....일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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