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전명 발키리 : 톰 크루즈 효과(Tom Cruise effect)의 결과는?

작년 크리스마스에 개봉한 영화 '발키리'를 본 후 생각난 것은 '톰 크루즈 효과' 였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톰 크루즈는 할리우드 최고 배우입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2000년대 들어 사생활에서 여러가지 뒷소문에 휩싸인 것이 사실입니다. 니콜 키드먼과의 이혼과 케이티 홈즈와의 재혼, 수리의 출산, 사이언톨로지교 논쟁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 와중에서 벌어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의 쌩쑈~~는 그 절정이라고 할수 있죠.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을 '좋은 톰'(good tom)의 마지막 유작이라고들 합니다.

사실 마약이니 총기니 이혼 따위가 판치는 할리우드에서, 톰크루즈가 이정도 사생활로 욕을 먹는 것은 어쩐지 억울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어쨌건 이런 사생활 이미지를 상쇄시키려는 듯이, 그는 '우주전쟁' '미션 임파서블 트릴로지' '라스트 사무라이' 등 영화속에서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왔습니다.  그는 언제나 영화속에서 고결한 모범생 이었으며, 원맨쇼 주인공 이었으며,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성공하는 미국의 영웅이자 불사신 이며, 그의 출연은 블록버스터의 보증수표 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발키리'는 전혀 톰 크루즈답지 않은 영화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영화 발키리는 2차대전 당시 히틀러를 암살하려던 독일 장교들의 음모를 그린 영화입니다.
2차대전사에 관심있는 한줌도 안되는 관객들을 제외한다면(유감스럽지만 사실입니다), 모든 관객들은 '발키리'를 독일판 '라이언 일병 구하기' 쯤으로 예상할 것입니다.
톰 크루즈가 얼굴에 인피가죽을 뒤집어쓰고 천장에서 외줄을 타고 내려와 껌폭탄으로 히틀러를 암살하는 것 쯤은 기대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오토바이나 탱크, 아니 BF-109쯤을 몰고다니며 왕년 탑건의 실력을 살려 신나게 나치를 펑펑 터트린 담에 히틀러를 암살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뭐니뭐니해도 천하의 톰 크루즈가 나오는 영화인걸요!

톰 크루즈는 과연 미션 임파서블 식으로 히틀러를 암살할까요?


그러나 이 영화에서 톰 크루즈는 주인공이 아닙니다. 게다가 정의로운 미국의 용사도 아니고 독일군으로 출연합니다. 게다가 이야기의 결말은 참담한 실패입니다. 2차대전이라는 거대한 역사 속에서 톰 크루즈식의 독불장군 행세는 오히려 거부감만 살 뿐이라는 건 그 자신도 잘 알 겁니다.
영화의 소재가 된 '7월 20일의 음모'는 비록 패망했다고는 하지만 한 국가를 뒤엎을뻔한 사건이었고, 관련 국가 및 인사들이 엄연히 새파랗게 눈을 뜨고 살아있는 터...천하의 톰 크루즈라 해도 자기 원맨쇼로 영화를 만들기 힘들 겁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 톰 크루즈는 거대한 음모 속 다양한 인물 가운데 한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톰 크루즈가 취한 방식은 실제 역사인 '7월 20일의 음모'를 시간표 그대로 풀어나가는 세미 정치 다큐멘터리 방식이었습니다. 실제로 영화 제목도 톰 크루즈의 극중 배역인 슈타우펜베르크가 아니라, 군사작전명인 '발키리'가 되어버렸구요.
사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내 반나치파들이 꾸민 히틀러 암살음모는 단순히 한 개인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나치에서 군부라는 권력이동(Power shift)를 꾀했던 정권교체극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결국 '발키리'는 인물 중심으로 실제 사건을 충실히 재현하다보니, 마치 MBC 드라마 실록 대하드라마 '제5공화국'으로 변신해 버리게 되는데요.

12.12 사태 당시 서울에 진주한 쿠데타파 전차와, 발키리 작전 당시 베를린에서 쿠데타파를 진압하는 친위대 병력.
발키리 작전은 어쩐지 동양 어딘가 모국의 쿠데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풀어보겠습니다.


그런 점에서 '발키리'는 좋은 정치군사 스릴러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좋은 톰크루즈 영화냐는데는 의문부호가 찍힙니다.
히틀러라는 거대한 악마를 처단해야 하는데 독일군들은 영화 중반부가 지나도록 총 한방도 안쏘고, 높으신 장군님들은 "씨바, 전쟁이다! 히틀러야, 한판 뜨자"가 아니라 골방에서 쑥덕쑥덕하거나 전화통만 줄창 붙잡고 있으니...톰크루즈식 화끈한 전쟁영화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맥이 빠질 일입니다.
 

누가 톰 크루즈 영화에서 총이 아니라 전화통 붙잡고 싸우는 장군들을 보고 싶겠습니까...


발키리는 분명히 좋은 정치스릴러 영화이고, 2차대전의 가장 중요한 사건 가운데 하나를 영화화한 작품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극장을 찾는 관객 가운데 대부분은 톰 크루즈의 신작 블럭버스터를 꿈꾸고 오는 커플 관객(...)이 대부분일 것이고, 2차대전 밀덕후는 극소수일거라는게 현시창...입니다. 그런 관객들이 막판에 톰 크루즈가 '위대한 독일 만세!'를 외치면서 총살당하는 모습을 보고 뜨악~해할 표정이 눈에 선합니다. 
이게 제가 우려하는 '톰 크루즈 효과'라는 겁니다. 실제로 12월 25일 개봉 첫날 영화관 관객들 표정도 딱 저랬구요. 크리스마스 연휴를 맞아 화끈한 전쟁 블럭버스터로 기분전환 하려고 왔는데, "어~ 톰크루즈가 죽네~~이게 뭐야"라고 말이죠.

설마, 내가 죽는단 말이야? (총살대 앞에 서서도 현실을 자각 못하는 톰 크루즈...?)


본래 브라이언 싱어 감독과 각본가 크리스토퍼 맥퀘리는 '발키리'를 '수퍼맨 리턴즈'의 속편을 찍기 전에 막간을 이용해 찍는 중간규모 스릴러물 정도로 기획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수퍼맨' 후속편이 엎어지고, 톰 크루즈가 이 영화에 관심을 보이면서 폴라 와그너 등의 돈을 때려부었고, 결국 7500만달러짜리 대형 블럭버스터로 변신한 것인데요.
톰 크루즈의 참여는 블럭버스터로의 변신 말고도 반갑잖은 부작용을 끌어들이게 됩니다. 대표적인 예가 독일연방군 당국이 톰 크루즈의 사이언톨로지 경력을 문제삼으며 독일내 촬영을 한때 불허한다든지, 영화 개봉이 늦춰지면서 톰 크루즈의 독불장군식 개입이 영화를 망쳐놓는다는 소문이 나온거라든지...심지어 영화 시사회도 안했느느데 영화가 엉터리라는 리뷰까지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이것도 톰 크루즈 효과라면 효과죠.

그러나 정작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톰 크루즈의 영화 참여를 반겼다고 합니다. '독일군이 모두 나치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못한 독일군의 모습을 전 세계로 알릴수 있다'는 이유가 그것인데요.
확실히 톰 크루즈 효과 덕분에 '발키리'라는 작품이 좀 더 많은 관객을 만날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톰 크루즈 효과가 영화 감상의 포인트까지 흐트릴까 조금 우려가 됩니다. 만약 '발키리'가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애초 의도한대로 중급 규모의 사실적 역사스릴러가 됐고, 좀더 무명의 배우가 주인공을 맡았다면 좀더 공정한 평가를 받지 않았을까 상상해봅니다.

발키리는 좋은 정치군사 미스테리 영화이고, 대중들에게 2차대전에 대해 좀더 깊은 생각을 할수 있게 하는 영화임에 틀림없습니다. '유주얼 서스펙트'의 감독 답게 관객을 쥐락펴락하는 텐션도 상당한 수준이구요. 이 영화를 극장에서 두번이나 본 저로서는 한국 관객분들도 다음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일반 관객 여러분, 부디 '톰크루즈가 히틀러 때려잡는 모험담'이 아니라 '독일군판 유즈얼 서스펙트'를 기대하고 봐주세요.
또 2차대전 밀덕후 여러분, 부디 7월 20일 음모에 대해 많이많이 글도 써주시고 밸리에도 보내주셔서 영화 감상을 더욱 풍부하게 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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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아 | 2009/01/12 13:14 | 영화이야기 | 트랙백 | 덧글(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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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더카니지 at 2009/01/12 14:05
브라이언 싱어 감독의 '독일군이 모두 나치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못한 독일군의 모습을 전 세계로 알릴수 있다'이 대목에서 강렬한 밀덕후, 그것도 독일군덕후의 냄새가 풍기는군요. ㅡㅡ
Commented by 하이아 at 2009/01/13 09:01
브라이언 싱어 감독은 이미 '죽음보다 무서운 비밀'(Apt pulpil)이나 'X멘'에서 독일군을 여러번 써먹은 적이 있죠. 어렸을 때부터 2차대전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은 유태인이라고 합니다.
Commented by ZAKURER™ at 2009/01/12 14:42
다른 언어->영어 전환 수법은 전에 다른 영화(아주 오래된 영화는 아니고)에서 먼저 써먹었죠.
뭔 영화인지 기억이 안 나는데, 처음에 다른 언어(아마도 독일어)로 지껄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대사가 영어로 페이드 인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사실 이런 수법을 처음으로 겪어 본 건 젠트라디어->일어로 바뀌는 마크로스 극장판이였지만요 :-)
Commented by 하이아 at 2009/01/13 09:04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숀 코네리 주연의 '붉은 10월' 말씀하시는 것 아닌가 싶네요.
러시아 잠수함 함장, 부함장인 숀 코네리와 샘 닐이 영화초반부 한 5분간 러시아어로 말하다가, 갑자기 중간에 성경을 읽으면서 영어로 전환되지요. 러시아, 독일 주인공이 영어로 지껄인다...는 딜레마를 해소하려던 나름대로의 고육지책이 아닌가 싶군요.
하지만 몇년 후에 나온 잠수함 영화 'K-19는 아예 처음부터 모든 등장인물이 대놓고 영어로 지껄이지요.
Commented by ZAKURER™ at 2009/01/13 12:45
아아, 맞아요. 붉은 10월호!
본 영화들을 DB화 하며 정리하질 않으니 기억이 섞여 버렸군요.

이런 그러고보니 벌써 20여 년이나....... 이젠 '오래된 영화'가 되었습니다 T.T
Commented by 학생 at 2009/01/12 17:05
그렇죠 이 영화는 나치때려 잡는 슈퍼히어로물이 절대 아니지요.
톰 쿠르즈 나오는 암살물이라고 이 영화를 액션영화로써 기대하는건 판단미스입니다.

추천쎄워봅니다.
Commented by 하이아 at 2009/01/13 09:10
추천 감사합니다.
실은 이 글을 쓴 이유도 한국 관객들이 이 영화를 톰크루즈식 액션영화로 생각하실까봐 노파심에서 그런건데요. 영화 마케팅팀이 아무래도 톰크루즈 방한을 앞두고 너무 '톰크루즈'에만 촛점을 맞춰 영화를 홍보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더군요.
영화를 보다보면 쿠데타라는 사건의 의미 그 자체, 전쟁 당시 독일인들의 나치 인식, 전후 전쟁범죄를 받아들이는 독일인들의 자세...등 많은 이야깃거리가 떠오르는데요...나중에 시간이 되면 천천히 적어보고자 합니다.
Commented by 누리샤 at 2009/01/12 18:30
좋은 영화였습니다. 긴장감 넘치고, 스크린에서 눈을 못 떼게 하는 그런 영화요. 마지막 결말도 너무 허무하지는 않게 잘 마무리 했다고 생각했구요. 저는 톰 크루즈의 전작들에 대한 고정관념이랄까요, 글쓴이 분이 지적하신 점들을 전혀 생각치 않고 있었던지라 영화 자체에 대한 만족감은 꽤 높았습니다. 제 주변 사람들 중에는 결말이 너무 뻔하다(히틀러가 권총자살로 죽음을 맞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는 점)는게 불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재미있는 포스팅 잘 봤습니다.^^
Commented by 리언바크 at 2009/01/12 18:55
전혀 논점에서 벗어난 이야기이지만,
맨 위에 '오프라윈프리쇼'에 나오는 장면은
<무서운영화4>에 패러디된 적이 있었죠.
하기사, <무서운영화4>의 메인소재 자체가
톰크루즈 주연의 <우주전쟁>이었죠. ^^
Commented by 유머나라 at 2009/01/13 08:54
재미없다는 얘긴지요.. 보러갈까 했는데~
Commented by ♨熱血♨ at 2009/01/13 09:57
마약보다 더 무서운게 사이비종굔데

톰크루즈는 그걸 진심으로 성과 열을 다하여 하는통에

마약사범보다 더 까이게 된듯 ㅎㅎㅎ;;;
Commented by 건전유성 at 2009/01/20 20:41
톰이 한국 와서 대인배스러운 모습을(그 계기야 어쨌든 간에) 많이 보여주고 가서,
원래 흥행성적보다는 좀 더 나와줄 듯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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