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미네이터, 총기와의 전쟁 미국 뉴스 이야기

경향신문 | 입력 2008.12.08 20:34 에 게재된 원고의 원문입니다. 모든 표현은 현재가 아닌 당시를 기초로 합니다.

 올해부터 미국에서 방송된 TV판 터미네이터가 미국 학교내 총기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진은 드라마 속 총기 장면(왼쪽)과 1999년 미국 콜럼바인 고교 총기난사 사건(오른쪽)의 한 장면.

미국의 평범한 학교 교실. 건장한 체격의 교사가 한사람씩 출석을 부른다. "존 코너!" 학생이 대답하기 무섭게 교사는 권총을 뽑아든다. 아연실색한 학생들을 무시하고 교사는 존 코너라는 이름의 학생에게 무차별적으로 총을 쏘아대기 시작한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 병력은 총에 맞아 쓰러지고, 학교를 배경으로 버섯 구름이 피어난다. 그리고 불꽃을 헤치고 나오는 터미네이터의 모습.

올해 1월 폭스 TV에서 첫 방송된 드라마 '터미네이터 : 새라 코너 연대기'의 제1회 첫 장면이다. 한국에도 유명한 영화 '터미네이터'의 속편격인 작품이지만, 미국에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단순한 영화의 속편 드라마가 아니다.

현실은 때론 악몽으로 다시 돌아온다. TV판 '터미네이터'의 첫장면은 미국 시청자들에겐 악몽의 재림이나 다름없었다. 방송으로부터 불과 1년전 일어난 버지니아텍 총기난사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무표정한 표정으로 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하는 괴한, 자녀(존 코너)를 붙잡고 오열하는 부모(새라 코너)의 모습, 무기력하게 사건현장을 어슬렁거리는 경찰의 모습은 '버지니아 텍 사건'을 연상시켰다. 사건 이후 공개된 비디오에서 조승희는 "너희는 오늘을 피할 수 있는 수많은 기회와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너희는 나의 피를 흘리게 하기로 결정했다"라고 말했다. 과연 조승희는 터미네이터의 화신이었고, 버지니아텍은 기계와의 전쟁터였을까.

'새라 코너 연대기'는 지난해 예고편이 공개될 때부터 시청자들로부터 "학교 총격장면이 너무 사실적이다" "버지니아텍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다"는 시청자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다. 빗발치는 비난에 결국 폭스TV는 본방송때 학교 총격전 장면 일부를 편집해야 했다. 대중문화지 '버라이어티'는 "버지니아텍 사건의 재림처럼 보일 수도 있다. 부디 머리를 식히고 관람하라"고 주의하기도 했다.

미국식 교육이 제일이라고 믿는 어느나라 대통령은 별로 믿고싶지 않겠지만, 벌써 수많은 존 코너가 미국 학교에서 죽어가고 있다. 2007년 35명이, 2008년에는 이미 11명이 학교에 등교했다 총에 맞은 시체로 돌아왔다. 미국내 많은 학교에 금속탐지기가 설치됐고, 최근에는 8세 어린이가 자신의 아버지를 총으로 쏘아죽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의 어른들은 학교에서 총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총을 쥐어주려 한다. 학교가 너무 위험하다는 이유다. 올해 텍사스의 한 학교에서는 수업중 교사의 총기 소지를 허가하기도 했다. "학교에서 경찰서가 너무 멀다"는 것이다. 애틀랜타에서 일어난 대학 총기 사건을 보도하는 뉴스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달렸다. "이것이 바로 학교에서 총기를 소지해야 하는 이유다. 만약 학생들에게 총기가 있었다면 가만히 당하기보다는 맞서 싸웠을 것"

'터미네이터-새라 코너 연대기'의 첫회는 겉보기엔 SF액션영화지만, 존 코너이 다니는 학교 이야기는 SF가 아니라 오늘의 이야기다. 학교내 갱단, 자살 문제, 가정 파탄 등 미국의 학교는 이미 전쟁터다. 이는 SF가 아니라 미국 교육의 현실이다. 이 드라마를 두고 '폭력적'이라는 비난은 나올지언정 '비현실적'이라는 비난은 나오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난 9월부터 시즌2가 방송된 TV판 '터미네이터'는 때론 현실이 SF보다 더 초현실적임을 보여주는 드라마다. 미국의 학교는 지금 '기계(machine)와의 전쟁' 중이라는 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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