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못보는 아이들을 위한 빛의 집(The lighthouse for the blind) 남부의 사람,풍경들

애틀랜타 킹스브릿지에 거주하는 해롤드 다이(Harod A. Dye) 씨는 우리 가족의 절친한 친구입니다. 올해 92세인 그는 미육군 퇴역 준장입니다. 그는 포병대위로 2차대전 유럽전선에, 중령 계급으로 한국전쟁 정전협정 감시단에 종군했습니다. 우리가족은 '제네럴'이라고 부릅니다.
제네럴은 자신의 종군경험에 관한 글을 몇가지 썼는데, 그의 허락을 맡아 한국전쟁에 관한 글 하나를 블로그에 소개해봅니다. 제목은 앞못보는 아이들을 위한 빛의 집(The lighthouse for the blind)입니다.


애틀랜타 영락장로교회 예배 시간에 젊은 한국 여성이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녀는 시각장애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을 잊을 정도로 피아노를 연주해 많은 박수 갈채를 받았다. 많은 남녀들이 그녀의 연주에 눈물을 흘렸다. 나 역시 눈시울을 적셨지만, 그들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였다.
 앞못보는 여성을 피아노로 안내하는 한국인 여성을 보면서, 내 기억은 1954년의 한국으로 돌아갔다. 내가 당시 정전협정 감시단으로 한국에서 근무하고 있었을 때 이야기다.
 
 내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본 광경은 100야드 이상 높이의 언덕 아래에 수천장의 벽돌을 싣고 멈춰있는 트럭이었다. 그리고 높다란 언덕의 아래부터 정상까지는 어린이들이 두줄로 질서정연하게 늘어서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영어와 한국말로 이렇게 노래하고 있었다. “예수, 나를 사랑하시네”(Jesus loves me, this I know)
 
 바로 며칠 전만 하더라도 세상에 가장 커다란 불행을 겪었을 아이들은 아름답고 감동적으로 노래부르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고아들이었는데, 몇몇은 정전협정이 맺어진 후 서울의 길거리에 버려져 있던 아이들이었다. 또다른 아이들은 미군 병원에서 전쟁으로 입은 상처를 치료받다가 이곳에 왔다. 다른 아이들은 구세군에서 간신히 식량을 받고 연명하던 아이들인데, 나이대는 어린 아기부터 12세까지 매우 다양했다. 장로교회 선교사들이나 제7일 안식일교회 선교사들이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온 아이들도 더러 있었다. 아이들은 앞으로 자기들이 살아야 할 집을 지으러 온 것이었다.
 
 미군 운전병이 트럭에서 벽돌을 한장 꺼내 앞 못보는 아이에게 건네주었는데, 그 아이는 다시 벙어리인 아이에게 건네주었고, 그 아이는 다시 귀머거리인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벽돌은 그렇게 앞못보는 아이들의 손을 거쳐 언덕 아래에서 정상까지 올라갔다. 아이들이 부르는 “예수 나를 사랑하시네”라는 노래와 함께.
 
 불과 며칠전 선교사들은 언덕 위에 ‘앞못보는 아이들을 위한 빛의 집’(The korean lighthouse for the blind)를 짓기로 결정했고, 미군 공병대가 이를 지원하러 나섰다. 공병대는 전쟁으로 파괴된 서울 길거리에 나가 트럭에 벽돌을 가득 담아왔다. 그렇게 모인 벽돌이 트럭 12대 분량이었는데, 문제는 그 벽돌을 언덕 위 고아원 건립 부지까지 옮길 방법이 없었다. 앞못보는 어린이들의 손길을 제외하고는.
 
 그때 언덕에서 봤던 광경을 떠올려보자. 600여명이 넘는 아이들이 줄줄이 늘어서서 벽돌을 한장씩 건네받아 전달하고 있었다. 아이들 중의 절반은 귀먹고 벙어리였으며, 또다른 절반은 앞을 보지 못했다. 다른 줄에는 한쪽 팔만 있는 아이가 벽돌을 받아 다른 쪽으로 넘기고 있었고, 또다른 팔없는 어떤 아이는 겨드랑이에 벽돌을 끼우려고 했다.(이들중 몇명은 나중에 미국에서 금속제 의수를 공수받을수 있었다.) 다리가 없는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이 수레를 타고 공사장으로 와 노래를 불렀다.  생각해보면 그 언덕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 비극의 현장이었지만 지금은 희망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곳은 어려운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지어진 앞못보는 아이들을 위한 빛의 집은 그 후로도 계속 커졌다. 수천명의 아이들이 그전에 다른 아이들이 지어놓은 곳에서 도움을 받았다. 애틀랜타에 있는 라이온스 클럽을 비롯해 미군기지, 회사와 교회에서도 지원이 왔는데, 그중 상당수는 장로교회에서 기부한 것이었다. 스톤마운틴에 있는 하이랜드 교회에서는 한국인 고아들을 위해 명태 간유를 보내왔는데, 300여명의 고아들이 먹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나는 그렇게 기부된 간유 몇통을 서울에서 가져다 성부(Holy King) 고아원에 갖다줬는데, 이곳은 아그네스 스캇 칼리지 출신인 필리 최 씨가 세운 곳이었다. 그녀가 간유를 나눠주면 고아들이 한줄로 늘어섰다. 마치 먹이를 바라는 병아리처럼 위로 입을 딱 벌리고 말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일일이 간유를 먹여줬는데, 단백질이 무척 부족했던 아이들은 너무 좋아했다.
 
 앞못보는 한국인 여성의 연주가 끝난 후 모두 자리에 앉았다. 나는 참석자들에게 이번 연주가 나에게 어떤 감동을 주었는지를 말하고, 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다 내 목소리가 전과 달리 떨리는 것을 느끼고 말을 멈추었다. 그 순간 나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그때 그 곳 언덕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예수, 나를 사랑하시네”(Jesus loves me, this I know)라는 아름다운 노랫말 소리와 함께.<끝>

마지막으로, 우리집 아이와 함께 놀고 있는 '제네럴'입니다.

덧글

  • luxferre 2010/06/15 11:17 # 답글

    간만의 포스팅이네^^
  • 하이아 2010/07/09 05:37 #

    한국에서 보고 오래간만이네. 앞으로 바쁘지만, 한달에 한번이라도 포스팅을 해보려고 노력중이라네.
  • Y_Ozu 2010/06/15 15:13 # 답글

    92세 할아버지와 돌 지난 아이가 함께 있는 사진이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하는 군요. 사진 한장에 담긴 1세기랄까.
  • 하이아 2010/07/09 05:40 #

    석환님,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미국에 있다보면 활발하게 활동하는 노인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그들을 보며 많이 배우게 되지요. 그 이야기도 나중에 써볼까 생각중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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