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 피살 100일, 그리고 만두 여의도 블루스


김선일씨 하면 여러분은 무엇이 생각 나십니까?
이라크 파병? 유일신과 성전? 조지부시? 로이터통신? 노무현 대통령?

저는 김선일씨 하면 만두가 생각납니다.
왜 하필이면 만두냐구요?


지난 6월 21일, 국회의 점심식사는 만두였습니다.
만두를 굽고 지지고 볶는 맛있는 냄새가 의원회관에 퍼졌습니다.

열린우리당 보건복지위 소속 의원들이 '만두사랑 캠페인'을 벌인 것이죠. 당시는 쓰레기 만두 파동으로 인해 만두제조업체가 도산 위기에 몰릴 때였습니다. 급기야 만두업체인 신영문 비전푸드 사장이 6월 13일 한강에 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번 행사는 국회의원이 직접 만두를 먹어 만두의 안전성을 증명하고 만두 소비를 촉진한다는 취지였습니다. 이날 행사를 위해 우리당에서 사들인 만두는 모두 200만원 어치. 만두의 배달 및 조리는 여러분도 아실만한 삼포만두에서 담당했습니다.

예상을 넘어 500그릇 이상 팔려나간 이날 만두 시식행사. 그러나 행사의 빛은 바랬습니다. 전날인 20일 김선일씨 이라크 피랍 사건이 터진 것이죠. 연일 '쓰레기 만두'를 두들기던 정치권과 언론도, 언제 그랬냐는듯이 일제히 김선일씨 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히 이날 행사는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

이날 정오, 저 역시 만두를 먹고 있었습니다.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과 같은 테이블에서 먹었습니다. 보건복지위 소속인 유의원은 만두 파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유의원은 "어릴쩍 할머니가 밥솥에 쪄주던 만두 생각이 난다"라며 "만두처럼 값싸고 맛있으면서도 패스트 푸드 생각이 나지 않는 음식도 드물다"고 만두 예찬론을 펼쳤습니다. 그러면서 "삼포만두 유사장과 이야기해보니 나와 같은 유씨 종씨"라며 "만두 파동으로 고생도 많을 텐데 반갑더라"는 말도 덧붙이더군요.
이때 카메라가 테이블로 다가왔습니다. 한 인터넷 신문 기자였습니다. 그는 "김선일씨 사건으로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이라크 파병을 철회해야 하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 유의원은 "정치적 제스추어가 아니라 우선 사람부터 구해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통일외교안보위나 국방위가 아닌,보건복지위 소속인 그로서는 지극히 원론적인 대답밖에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닌밤중의 홍두깨같은 질문이 끝나고 유의원과 저는 다시 만두를 먹었습니다.

다음날인 22일 새벽, 김선일씨 피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리고 해당 인터넷 신문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유시민 의원님, 지금 만두가 넘어갑니까?"
김선일씨 납치불구 만두사랑 캠페인 참가한 유시민 의원


기사에 첨부된 동영상은 식사중이던 유의원과의 문답을 편집해 싣고 있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옆에 있던 저는 찍히지 않았지만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기사가 실린 날짜는 김선일씨 피살 직후. 그러나 인터뷰한 때는 김씨가 아직 살아있던 21일이었습니다.)

해당 기사를 보고 어쩐지 슬퍼졌습니다.
유의원과 같은 테이블에서 만두를 먹었다는 죄로, 졸지에 '사람 죽는데 만두 잘도 먹는 생각없는 놈'으로 싸잡아 찍혀서가 아니었습니다.
그 기자의 질문이 '만두와 김선일씨 가운데 어느쪽이 중요하냐?'고 강요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기자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김선일씨의 목숨이었을 겁니다. 혹시라도 있을 이라크 파병 철회라는 정치적 목적은 일단 제쳐놓읍시다. 명색이 진보 대안언론을 자처하는 인터넷 신문 기자니까요. 김선일씨라는 중차대한 문제 앞에, 맛있게 만두를 먹는 사람은 '생각없는 놈'으로 찍혀도 쌀 겁니다.

하지만 만두는 결코 하잘것 없는 게 아닙니다. 국민의 먹거리, 위생, 업체 도산 문제같은 건 커다란 문제는 모두 차지해놓도록 하죠. 하지만 만두파동은 이미 사람의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한강에 투신한 자살한 만두공장 사장의 목숨 말이죠.

제가 슬퍼진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 기자의 질문이 마치 "김선일씨 목숨과 만두공장 사장 목숨 가운데 어느쪽이 중요하냐"고 강요하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계몽과 투쟁에 몰두한 나머지, 정작 민중과 유리되어 버린 세력은 그런 질문을 강요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만두공장 사장과 김선일씨도 모두 소중하다고 대답하면 안될까요? 제게 있어 만두와 김선일씨는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이 슬픈 문제입니다. 둘다 모두 소중한 인간의 생명이 달린 문제니까요.

만두를 먹며 "만두업체 사장이 나와 종친"임을 말하던 유의원. 그의 뇌리에도 자살한 만두업체 사장이 스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군요.



지난 9월 30일은 고 김선일씨 피살 100일 이었습니다.
고 신영문 비전푸드 사장이 투신한지 107일 되는 날이기도 합니다.

100여일이 지난 지금, 김선일씨와 신사장은 사이좋게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김선일씨 통보를 둘러싼 정부와 로이터 통신간의 갈등은,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이 유야무야되고 있습니다. 자이툰 부대는 예정대로 파병돼 이라크에서 추석을 보냈습니다. 쓰레기로 몰렸던 만두는 언제 그랬냐는듯이 버젓이 팔리고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볼 수 있던 1,000원짜리 만두 가판이 사라진게 유일한 변화라면 변화입니다.

두 생명에게 바쳐졌던 범국민적 애도와 추도. 하지만 세달이 지난 지금, 그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잊혀진 것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같이 추운 날씨, 만두 한판 드시는게 어떠세요?
생명에 대한 가장 좋은 애도는 '잊지 않는 것'이니까요.

덧글

  • ZAKURER™ 2004/10/02 14:40 # 답글

    한국식 이분법이지요.
    만두VS사람목숨, 과거사청산VS경제성장.....따지고 보면 각각 다른 분야에서 근본적인 가치관을 형성하는 정말 중요한 문제들이건만 단지 동시기 이슈라는 점만으로 대각점에 위치시켜 놓고 '자, 둘 중 하나를 택하라 그거보고 네 사상적 위치를 고정시켜주마' 하는 강요를 강제하는 우리네 사고방식이지요. 씁쓸할 따름입니다.
    건 그렇고 오늘은 정말 만두가 어울리는 날이군요 :-)
  • skan 2004/10/02 15:02 # 답글

    그렇지 않아도 방금 만두 먹고 왔습니다.
    둘다 중요한 문제인데, 하나를 강요하는건...
  • ColoR 2004/10/02 15:43 # 답글

    저녁으로 만두나 해 먹어야겠습니다. 길거리에 가판대가 없어진것도 그렇고 많이 씁쓸하네요.
  • NOT_DiGITAL 2004/10/02 18:57 # 답글

    씁쓸합니다. 하아.

    NOT DiGITAL
  • Guts 2004/10/02 19:40 # 답글

    어느 것 하나만을 강요하는 건 이제 그만 했으면 하네요.
    저도 저녁엔 만두나 먹어야겠습니다.
  • 백금기사 2004/10/02 21:23 # 답글

    변증법보다 못한 흑백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저급한 사회에서 뭘 더 바라겠습니까.
  • 로무 2004/10/02 21:58 # 답글

    흑 아니면 백....-_-
  • 서찬휘 2004/10/03 02:28 # 답글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애도.
    동감해요.
  • kunoctus 2004/10/03 08:17 # 답글

    저 기자(그리고 편집부)의 한심함엔 정말 치가 떨리는 군요. 저것은 국립묘지에 가서 살인자라고 외치는 것과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입니까. 맡은 직책이 있고, 행사의 목적이 있는 바 행사자체의 문제점을 걸고 넘어질 게 아니라면 당연히 제3의 화제는 거론하지 않고 또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 상식.
    대한민국 언론에게서 "유료도료당"과 같은 불편부당함을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_-
  • kunoctus 2004/10/03 08:18 # 답글

    그렇다곤 해도 삼포만두는 심히 맛이 없어서..-_- 별로 먹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 산왕 2004/10/03 22:45 # 답글

    제가 사는 동네에는 만두가판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만두는 뭐 별 상관없이 꾸준히 먹고 있으니;;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뭐 말할 필요가 없겠군요^^;
  • adol 2004/10/03 23:54 # 답글

    뭐랄까...가슴속까지 싸아 하니, 씁쓸하군요.
    오랫만에 들렀다가 정말로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아참, 링크해 가겠습니다.;

    - teamdevice.net
  • 하이아 2004/10/05 15:52 # 답글

    ZAKURER™ 님> 요즘 '경제도 어려운데 웬 과거청산이냐'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런 분들께는 '과거청산 그만두면 정말 경제가 살아나나요?'라고 되묻고 싶어진답니다.
    skan 님> 처음 뵙겠습니다. 반갑습니다.
    ColoR 님> 이글루 최대 조회수를 자랑하는 ColoR님 블로그에 만두가 올라가면, 국내 만두 판매량이 급증하지 않을까요.
    NOT_DiGITAL 님> 씁쓸하죠. 하아.
    Guts 님> 저녁으로 드신 만두는 맛있으셨나요?
    백금기사님, 로무님> 도 아니면 모, 흑 아니면 백을 강요하는 건, 우리 사회가 갈수록 여유가 없어진다는 증거일지도?
    서찬휘 님> 찬휘님은 뭐든지 오래 기억하시는 분이니까요.
    소민 님> 삼포만두 그만하면 먹을만하지 않나요? 그런데 '유료도료당'은 무슨 뜻이죠?
    산왕 님> 만두가판이 아직 남아있다니 좋은 동네로군요.
    adol 님> 반갑습니다, 링크 감사합니다.
  • akachan 2004/10/06 15:57 # 답글

    저도 자주 그런 일을 겪고, 그것 때문에 절 무진장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로서는 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죠. 어떤 특정한 작품에 대한 비판 또는 비아냥이 자신을 조롱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 자신이 주장하는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지 않으면 적이라 생각하는 사람들, 양극에 놓인 정치적 입장에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으면 비겁한 양비론자가 되는 사회.....점차 우리 사회에는 생각할 여유가 사라져가는 것 같습니다.
  • 하이아 2004/10/07 23:21 # 답글

    akachan 님> 그렇습니다. 영화든 정치든 애니메이션이든, 어떤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거는 건 좋지만, 그때문에 다른 사람을 미워한다면 그건 정말로 바람직한 걸까요. 사람보다 더 중요한게 세상에 어디있길래 말이죠...
  • bzImage 2004/10/10 10:10 # 답글

    삼포만두... 솔직히 많이 밋밋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유료도로당은, 이영도씨의 판타지 소설 "눈물을 마시는 새" 에서 나온, "돈을 내면 누구든 우리 길의 이용자, 돈을 내지 않으면 누구든 적" 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하는 자들 이야기입니다.

    ... 어떤 의미에서 대한민국 언론이 저런식이 되면 곤란할지도 (...)
  • ZesuSB 2004/10/12 06:07 # 삭제 답글

    기자든뭐든 사람중엔 덜떨어진사람있는겁니다.
  • J.Beckett 2004/10/13 03:53 # 삭제 답글

    얼핏 들었던 이야기지만, 이렇게 글을 통해 읽으니 새삼 자네의 느낌이 잘 전해지는군. 이렇게 달필인 자네가 붓을 꺾고 어딜 갈 수 있겠나? ^^;
  • J.Beckett 2004/10/13 03:54 # 삭제 답글

    아참... 내가 설정을 잘못한 걸까? 1280*1024의 해상도로 보고 있는데, 지금 글꼴은 상당히 가독성이 떨어진다네. 참고하시길...
  • 야옹이짱 2004/10/15 17:28 # 삭제 답글

    세상물정 전혀 모르던 저는 친구들한테서 '만두파동' 이야기를 들은 그 때부터 김선일씨 사건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고보면 대구 지하철 사건도 벌써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일이란 이리도 덧없는 것이지요. 그렇기에 조금이라도 더 기억에 남으려고 살아가는 건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 하이아 2004/10/17 00:17 # 답글

    J.Beckett 군> 오래간만이야. 얼굴본지 꽤 됐네? 조만간 놀러갈께.
    참, 그리고 글꼴 가독성 문제는 스킨의 문제인 듯 하군. 해당 스킨이 컴퓨터 폰트에 따라 굴림체로도 보이고 필기체로도 보이는 듯. 지금 스킨을 바꿔볼테니 보고 읽기 편한지 이야기해주기를.
    bzImage 님> 밋밋한 맛이라도 괜찮아요. 저는 만두를 주로 라면에 넣어서 먹기 때문에 말이죠. 그리고 '유료도료당'에 대한 설명 감사합니다. 공부가 되었군요.
    ZesuSB 님> 이 경우는 덜떨어졌다기 보다는 너무 머리가 좋아서 탈일지도 모르죠.
    야옹이짱 님> 망각이란 두뇌를 보존하기 위한 인간의 자기방어기능이라는 주장도 있긴 하죠. 가끔씩 잊지 말아야할 것도 잊어서 탈입니다만.
  • 은림 2004/10/19 22:41 # 삭제 답글

    퍼가고 싶지만.. 저한테는 어울리는 장소가 없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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